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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의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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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의 시설
명칭 내용
(현) 관풍루
(觀風樓)
영남제일관

경상감영의 정문인 외삼문(포정문)의 2층 누각을 관풍루라고 불렀다. 1906년 읍성이 철거될 때 지금의 달성공원으로 관풍루와 망경루 건물을 옮겼으며, 지금의 관풍루는 1970년 해체 복원된 것이다.

 

관풍루는 감영과 민가의 경계 위치에서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에 맞춰 풍악을 울리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렸다고 한다.

선화당
(宣化堂)
영남제일관

지금의 일반도청 청사의 기능과 법원의 기능을 복합한 건물로써 관찰사의 정무를 처리하던 감영의 본관건물이다. 1601년(선조34) 세워졌으며 몇 차례의 화재를 겪은 후 1807년(순조7) 새로 지었고 1970년에 중수하였다. 선화당이라는 이름에는 ‘임금의 덕을 선향하고 백성을 교화한다(宣上德而化下民)’는 뜻이 담겨 있다.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1호)

징청각
(澄淸閣)
영남제일관

관찰사의 처소였던 징청각.

1601년(선조34) 선화당, 응향당 등 여러 건물과 함께 건축되었으며, 여러 차례 화재로 불탄 것을 1807년(순조7)에 다시 지었고 1970년 공원 조성 때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징청(澄淸)’에는 ‘깨끗한 정치를 행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호)

외삼문
(外三門)
경상감영의 정문, 외삼문 포정문(布政門). 조선시대 감영의 진입공간은 외삼문, 중삼문, 내삼문으로 구성되는 3문 구성이 일반적이다. 경상감영의 경우에는 중삼문에 대한 기록이 없어 2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상감영의 외삼문은 중층 누각으로 2층의 누각을 ‘관풍루(觀風樓)’라고 불렀다. ‘누각 위에서 백성들의 삶을 살핀다’는 뜻이 담겨 있다.
내삼문
(內三門)
선화당 입구 내삼문. 경상감영 진입공간은 외삼문과 내삼문 2문으로 구성되어 선화당과 직선 축으로 연결됐다. 1906년 십자도로 건설 당시 내삼문 뒤로 동·서문로가 신설되면서 경상감영은 선화당 공간과 외삼문·내삼문 공간의 남북으로 분리됐다. 1920년 헌병대본부(현 병무청)가 들어서면서 내삼문은 철거되었다.
내아
(內衙)
내아는 관찰사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관아에 있던 안채를 가리키며, 내동헌이라고도 한다. 17세기 이후에는 양계를 제외한 6도에서도 수령이 가족과 함께 부임함으로써 내아의 비중이 커졌다.
연초당
(燕超堂)
연초당은 도사의 집무소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도사는 감사의 수석부관을 말한다. 조선시대 정조대에 이르면 부임하지 않는 도사의 수가 현저히 증가하고, 순조 후반기 이후에는 거의 부임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다가 1882년(고종19)에 이르러 도사의 직은 폐지된다.
백화당
(百和堂)
감영의 비장(裨將)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비장은 원래 관찰사나 절도사 등 지방관이 데리고 다니던 참모인데, 조선후기에는 방어사를 겸한 수령들까지 비장을 거느리는 것을 관례화하여 그들에게 민정염탐을 시키기도 하였다.
군뢰청
(軍牢廳)
죄인을 다스리는 군뢰들이 머물던 공간이다. 문관직 하부실무자들과는 별도로 군사와 경찰 업무 등 무관직 업무를 담당한 군관과 포교, 그리고 이를 보좌하던 통인, 군뢰, 사령, 영노비 등의 하부실무자가 있었다.
외영리청
(外營吏廳)
감영에는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영리와 잡역을 담당하는 영노비가 있었다. 영리는 도내 각 읍의 유력한 호장급에서 차출하되 일정한 임기를 가지고 있었다. 강력한 향리층에서 차출되었기 때문에 향리세계를 영도하는 위치에 있었고, 따라서 감사의 직무수행과 도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영리청
(內營吏廳)
영리는 감사 순력 시 향도 내지 안내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감사의 명령을 받아 수령의 치읍과 민정의 비행을 적발하기 위해 영리들은 정보를 수집하고, 감사의 수족으로 행세하였다. 영리는 감영의 하부 행정실무자들 중 가장 상위 직제에 해당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외영방 마감소
(外營房 磨勘所)
외영방 마감소는 영리들이 숙직하는 공간을 말한다. 이외에 영리들의 처소인 내공사청도 있었다.
사령청
(使令廳)
하부 실무자들은 행정업무를 관장하던 이서 계층을 비롯하여 군관과 포교 계층을 상부직제로 하고 이들을 통인이 보좌하도록 하였다. 통인보다 격이 낮은 사령, 영노비 등이 최하층에서 이들을 보좌하며 심부름 등을 담당했다.
관노청
(官奴廳)
관노들이 거처하는 공간이다. 감영의 하부 실무자로 소수의 관원을 보좌하여 감영의 실무를 담당하는 집단으로는 인리, 통인, 사령, 관노 등이 있었다.
호적고
(戶籍庫)
3년마다 전국의 호구(戶口)를 행정구역별로 조사하여 호구의 수와 이들의 직역(職役 : 신분)·성(性)·연령 등을 파악하고, 또 그 동안의 출생·사망·이주·도망 상황 등을 파악하여 호적대장을 작성하였다. 호적대장은 범죄자의 색출, 세금 징수, 부역의 동원 등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자료로, 본읍(本邑), 감영, 호조(戶曹, 조선 후기에는 한성부)에 각각 나누어 보관하였다. 감영의 호적고는 호적대장을 보관하는 창고이다.
중영
(中營)
경찰 및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자들을 중군이라 하고, 중군의 집무시설은 하나의 영역을 형성하여 중영이라 불렸다. 중영에는 총사청, 도훈도청, 사령방, 군뢰방 등이 있었다. 1903년 대구시가 지도에 의하면 중영은 감영의 동쪽에 인접하여 배치되어 있었다.
자료 담당자 :
도시경관과
김성문
053-661-2813
최근수정일 : 20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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