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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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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동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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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동
본래 대구시 서상면의 지역으로서, ‘계산’또는 ‘계산리’라 하였는데 1914년에 명치정(明治町) 1정목이라 하였다. 1946년에 계산동으로 고쳤다.
공평동
이 지역에는 원래 대구 지방 법원이 있었는데, 지방법원에서 모든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대구부 동상면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성리ㆍ신전리의 각 일부를 합하여 남용강정(南龍岡町)이라 하였다가 1946년부터 공평동으로 불려졌다.
교동

처음 향교가 있었던 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이태조 7년에 동문밖 고성에 세운 향교가 불타버리자, 정종 7년에 부동으로 옮겨지었다고 추측된다.

 

향교가 있던 자리라 하여 이렇게 불려졌다. 향교골 또는 향교동이라 하였다. 대구부 동상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덕리 일대를 병합하여 동본정(東本町)이라고 하다가 1947年 4月 1日 부터 향교골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불려 졌다.

 

이후 1백 90여년간 이곳에 있던 향교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599년 관찰사 한준겸과 부사 김구정, 홍사 임상의가 현 달성공원(達成公園) 자리에 새로 건립했는데 당시만 해도 그곳은 외곽지대였으므로 뱀과 빈대등이 들끓어 성현을 모시기에는 불결하다 하여 1605년 관찰사 류영순이 교동자리로 옮겼다. 그후 1933년 현재의 향교자리(중구 명륜로 197, 남산동735번지)로 이건했다.

 

대구부 동상면 지역으로 1911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용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본정(東本町)이라 했다가 1947년에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교동(校洞)이라 했다.

자료 담당자 :
행정지원과김은영053-661-2215
최근수정일 : 201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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