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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동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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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동
대구부 서상면의 지역으로서 달성이 있으므로 달성리라 하였는데 1914년에 달성정(達城町)이라 하였다가 1946년에 정(町)을 동(洞)으로 고쳤다.
대봉동
1918년 지방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달성군 수성면의 봉덕동과 대명동이 대구부에 편입되는 동시에 두 동의 일부를 합하여 대명과 봉덕의 앞 글자를 따서 대봉정(大鳳町)으로 불려지다가 1946년에 정(町)을 동(洞)으로 고쳤다. 1951년 대구시 남구 대봉 1, 2, 3동으로 분할되고 다시 1980년 4월 남구의 일부가 중구로 합쳐지면서 대구시 중구 대봉 1, 2동으로 양분되었다. 1981년 직할시 승격으로 중구 대봉1, 2동이 되었다.
대신동

대신동(大新洞)은 조선시대 평양, 강경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꼽히던 큰장이 있었다. 매월 2日인 7日, 12日익 17日, 22日인 27日인 등 5일장으로 1920년 서문 밖인 천황당(天皇堂)못자리로 옮긴 뒤부터 시장이름을 서문시장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시 천황당(天皇堂) 못은 성내 한량들이 즐겨 찾던 놀이터고 봄가을이면 인근 부녀자들의 놀이터로 각광을 받던 곳이었다. 주변 구릉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진 자연 호수로 지금의 동산병원 앞길과 대신로타리, 대신파출소 앞길, 옛 계성중고등학교 담을 따라 위치한 건어물상 일대가 물에 잠긴 자리였다. 주변은 참나무 숲이 무성하던 곳이었으나 1920년 못을 메우고 큰장을 이곳으로 옮겼다.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큰장의 명예를 누리던 서문시장이 그 영예를 잃어간 것은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상권이 분산된 탓도 있겠으나, 옛날 천황당(天皇堂) 못에 실연 당하고 투신 자살한 처녀의 원혼에 의해 큰불이 잦은 관계라고 믿는 상인과 주민이 많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서문시장은 그 위세를 자강하며 도매상으로 대구권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못을 주변으로 새로운 동네가 형성되었는데, 이 동네의 이름을 짓기 위하여 "큰 장"이란 말에서 "큰 대(大)"와 "새로 생긴 동네"라는 말에서 "신(新)"을 합쳐 대신동이라 불렀다. 대구부 서상면의 지역인데 1914년에 전동, 후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정(新町)이라 하였다가 1946년에 대신동으로 고쳤다.

대안동
대구부 동상면의 지역으로서 1914녀에 후동 일부와 복내동 일부를 합하여 대화정(大和町)이라 하였다가 1946년에 대안동으로 고쳤다.
덕산동
문화동
대구부 동상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에 신동 일부를 갈라서 남욱정(南旭町)이라 하였다가 1946년에 문화동으로 고쳤다.
자료 담당자 :
행정지원과박혜영053-661-2228
최근수정일 :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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